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의 확산은 전 세계 중앙은행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역시 디지털 자산의 부상에 대응하여 CBDC 연구 개발, 제도적 분석, 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전략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한국은행이 현재까지 발표한 암호화폐 대응 전략을 중심으로, 디지털화폐(CBDC) 발행 준비 현황과 정책 방향성을 분석합니다.
암호화폐 확산 속에서 고민하는 중앙은행의 역할
지난 10여 년간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암호화폐 시장은 급속한 확장을 거듭하며, 기존 금융 시스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초기에는 투자자들의 호기심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글로벌 기업, 금융기관, 국가 정부까지 암호화폐와 디지털 자산을 공식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은 기존 통화 시스템을 디지털 환경에 맞춰 재편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한국은행 역시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한국은행의 주요 역할은 ‘물가 안정’과 ‘금융 시스템의 안정’이다. 암호화폐의 등장은 이 두 가지 목표를 흔들 수 있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비트코인이나 스테이블코인 등 민간이 발행하는 디지털 자산이 급속히 퍼질 경우,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기존 화폐 시스템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통화정책의 실효성 또한 낮아질 우려가 있다. 이 같은 배경 아래, 한국은행은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 통화에 대한 연구와 대응 전략을 집중적으로 확대해 왔다. 202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은행은 암호화폐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간접적인 언급에 그쳤다. 그러나 2021년 이후 글로벌 CBDC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자, 한국은행도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디지털 화폐 연구와 실험을 시작했다. 특히 2022년부터는 한국형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개발을 위한 시범 사업을 본격화하며, 블록체인 기술을 실제 통화 시스템에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지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행은 암호화폐를 ‘단순한 투기 자산’이 아니라, ‘디지털 경제 체제 내 하나의 금융 질서’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에 맞는 대응 전략을 단계별로 수립하고 있다.
CBDC 실험과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한국은행의 전략 분석
1. 한국형 CBDC 개발 추진
한국은행은 2020년부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기본 설계와 기술 검토를 진행해 왔다. 이후 2021년에는 카카오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 X’와 협력하여 CBDC 파일럿 시스템 구축에 착수했고, 2022년부터 2023년까지는 실거래 환경을 모의한 시범사업을 단계적으로 수행하였다. 이 시범사업에서는 스마트 계약, 오프라인 결제, 대체불가능토큰(NFT) 연동 실험 등도 포함되었으며, 단순한 결제 기능을 넘어 다양한 디지털 금융 서비스 통합 가능성을 검토했다. 또한 2024년에는 금융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유관 부처와 협업하여 디지털 원화의 법적 정의와 통화정책적 영향 분석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2. 암호화폐에 대한 제도 분석 및 정책 대응
한국은행은 암호화폐를 직접 규제하는 기관은 아니지만, 통화정책 및 금융 안정성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Stablecoin)과 디파이(DeFi) 플랫폼의 확산은 기존 금융권 대체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른 시스템 리스크 분석을 강화해 왔다. 또한, 한국은행은 “암호자산은 법정화폐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면서도, 해당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민간 암호화폐와의 공존 전략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즉, CBDC가 민간 암호화폐를 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보완적 디지털 결제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3. 글로벌 중앙은행과의 협력 확대
한국은행은 BIS(국제결제은행), 일본은행, 스위스 중앙은행 등과 함께 다자간 CBDC 공동 실험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다. 특히 ‘Project Dunbar’, ‘mBridge’와 같은 글로벌 CBDC 상호운용성 프로젝트에 참관국으로 참여하여, 다른 국가들과의 결제 및 환율 시스템 연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지 기술적 교류를 넘어서, 한국 디지털 통화가 글로벌 금융 인프라와 어떤 방식으로 통합될 수 있는지를 미리 모색하는 과정으로 평가된다.
한국은행의 전략이 갖는 의미와 향후 과제
한국은행의 암호화폐 대응 전략은 단순한 기술 수용을 넘어, 금융 통치의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CBDC 실험을 통해 한국은행은 디지털 시대의 통화 주권을 재확인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으며, 암호화폐의 확산을 무조건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권 내에서의 역할을 조율하려는 실용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국은행이 CBDC를 단지 현금의 디지털화로 보지 않고, 지급결제 시스템의 혁신, 금융포용성 강화, 불법자금 차단 등 다층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향후 디지털 화폐가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서, 경제 정책과 사회적 기능까지 포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CBDC의 실제 발행 일정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으며, 국민의 수용성, 프라이버시 문제, 금융기관과의 역할 조정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특히 비트코인과 같은 민간 암호화폐와의 관계 설정, 투자자 보호 정책,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 등도 함께 고민해야 할 요소다. 결국 한국은행의 암호화폐 전략은 제도적 수용과 기술적 진보를 동시에 추구하는 ‘균형의 예술’에 가깝다. 급변하는 글로벌 디지털 금융 환경 속에서 한국은행이 얼마나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전략을 펼칠 수 있는지는, 향후 한국 금융 주권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